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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고 싶은 것,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보고 싶은 것 영화 후기 "영화는 숫자가 아니야. 영화는 별 하나 별 두 개가 아니야. 영화는…" 누군가의 한숨 같은 독백이 끝나면 왁자지껄한 술자리 풍경이 이어진다.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듯 서로 술을 권하는데 갑자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거짓말처럼 쓰러진다. 감독님! 감독님! 놀란 사람들이 애타게 쓰러진 남자를 깨워보지만 감독이고 뭐고 죽은 남자가 일어날 리 없다. 감독 김초희 이름 석자가 바로 이 장면 뒤에 나타난다. 홍상수 시대의 종말을 말하는 건가. 김초희 감독의 독립 선언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찬실이(강말금 분)의 막막한 표정이 잠시 나오더니 4:3의 화면 비율이 16:9로 바뀌며 영화가 시작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트럭 한대 올라올 수 없는 오르막길을 올라 반 지하도 아니.. 2021. 11. 16.
영화로 배우는 법의 정신 영화 후기 판사는 성직자와 닮았다. 길고 검은 가운을 걸치고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점이 그렇다. 성전과 법정 역시 서로 비슷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는 단상 위에서 판사와 성직자는 죄를 다스리고 때론 어둠에 갇힌 인간을 구원한다. 사법부, 특히 판사의 권위는 이러한 공간의 구조, 시선의 위계, 입장과 동시에 저절로 '기립'하게 되는 장엄한 세리모니 속에서 심판자의 그것과 동일시 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눈앞에 둔 18년차 김준겸 부장판사(문소리 분)는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 재판의 재판장을 맡는다. 그녀는 배심원 후보자를 면담하며 훈시하듯 말한다. “법이란 제멋대로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기준을 만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신의 음성 같이 사.. 2021. 11. 16.
무너지지 않는 개인의 발견 영화 후기 1. 본명 양미숙. 50년 6월. 하필이면 전쟁통에 태어났다. 작년 겨울 청주 교도소 여사동에서 연고 하나 없이 죽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승에 머문 시간은 고작 66년. 그녀는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삼팔따라지 전쟁고아다. 난리 통이었으니 당연히 먹고살기 어려웠고 나이를 먹도록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안 해본 짓이 없었다. 남의 집 식모살이에 여공생활을 전전하다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동두천으로 흘러들어갔다. 미군들에게 “다리를 벌려주는” 양공주 생활을 하다가 흑인 병사의 아이를 덜컥 낳았고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입양시킨 뒤 “평생을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칠십이 가깝도록 평생을 자기 손으로 벌어먹고 살았다는 미숙씨의 또 다른 이름은 소영이다. SO YOUNG. .. 2021. 11. 15.
달아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이 있다. 영화 후기 가난을 다루는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의 처지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레바논에서 실제 난민을 캐스팅해서 촬영했다는 이 대표적이다.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비참한 현실에 공감하고 그 삶의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아이의 처지를 동정한다. 그러나 가난을 다루는 영화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관객들을 '가난의 구경꾼'으로 만들기 쉽다. 관객은 주인공들의 삶에 연민하면서도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게 된다. 가난한 주인공이 타자화되는 과정 속에서 가난 역시 현실과 무관한 어떤 추상적 상태로 동결된다. 영화 의 주인공 무니가 사는 매직캐슬은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올랜도 외곽에 있다. 매직캐슬이라는 과장된 이름과 다르게 무니의 집은 일주일치씩 방값을 내는 모텔이다. 온 몸에 문신을 한 무니.. 2021.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