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달아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이 있다.

by 아르띠무너 2021. 11. 14.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션베이커, 2017)> 후기

 

가난을 다루는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의 처지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레바논에서 실제 난민을 캐스팅해서 촬영했다는 <가버나움>이 대표적이다.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비참한 현실에 공감하고 그 삶의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아이의 처지를 동정한다. 그러나 가난을 다루는 영화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관객들을 '가난의 구경꾼'으로 만들기 쉽다. 관객은 주인공들의 삶에 연민하면서도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게 된다. 가난한 주인공이 타자화되는 과정 속에서 가난 역시 현실과 무관한 어떤 추상적 상태로 동결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주인공 무니가 사는 매직캐슬은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올랜도 외곽에 있다. 매직캐슬이라는 과장된 이름과 다르게 무니의 집은 일주일치씩 방값을 내는 모텔이다. 온 몸에 문신을 한 무니의 엄마는 이제 겨우 스물 두 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워 물고,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는 철없는 여자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역시 가난을 다룬 영화지만 그 방식은 전혀 다르다. 현실은 더없이 비참하고 암담한데 영화의 미장센은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분위기다.

주황색, 보라색, 하늘색이 화면 가득하게 펼쳐진다. 원색의 건물들은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지역민의 가난을 은폐한다. 겉만 봐서는 누구도 빈대가 들끓는 매직 캐슬의 객실 상황을 알지 못한다. 여섯살 꼬마 무니는 이 곳에서 또래의 친구 스쿠티, 젠시와 어울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무니의 철없는 엄마가 스쿠티를 봐주는 조건으로 팬케잌 가게에서 일하는 스쿠티의 엄마로부터 몇 가지 인스턴트 음식을 제공받는 것 외에 무니가 먹을만한 음식도 없다. 그래도 무니는 기죽는 법이 없다. 친구들을 이끌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손님들에게 받은 몇 푼 동전으로 공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구호차량이 제공하는 빵과 잼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이다.

카메라는 무니의 뒤를 따라가며 무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덕분에 관객들은 무니의 친구가 되어 즐거운 모험을 하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가끔씩 엄마가 성매매를 하는 동안 샤워실 커튼 안에서 목욕을 하는 무니를 지켜봐야 할 때도 있고, 위험한 장난에 혀를 찰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무니의 천진하면서도 야무진 표정에 매료되어 무니가 처한 현실을 잊게 된다.

 

“나는 이 나무가 좋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거든.”

 

무니가 빵에 잼을 발라먹을때 올라앉아있던 나무는 정말 쓰러져 지면과 수평을 이룬 채 가지를 늘어뜨린 거대한 나무다. 어쩌면 무니는 자신의 삶이 다른 나무들처럼 영원히 똑바로 설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넋을 놓고 있던 관객들은 무니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할 때 비로소 무니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가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한다.

중반부가 넘도록 잔잔하게 전개되던 영화의 맥박이 돌연 요동치면서 급 반전 되는 건 성매매 혐의로 고발당한 무니의 엄마로부터 무니를 보호하기 위해 찾아온 아동보호센터 직원들의 등장 때문이다. 당장 보호조치를 받아야 할 무니는 자기 앞에 닥쳐온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니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것 처럼 변해가면서 관객들의 감정도 요동친다.

 

이 영화의 압권은 울먹이며 이별을 고하러 찾아온 무니와 친구 젠시가 손을 잡고 무작정 디즈니랜드로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시퀀스다. 디즈니랜드는 무니가 사는 매직캐슬과 인접해 있지만 무니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이다. 그악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디즈니랜드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숨어든다. 하필 무니와 젠시가 달아난 곳이 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디즈니랜드일까. 영원히 무니는 가난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역설일까. 아니면 꿈도 마법 없는 <매직캐슬>에서 살며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향해 달려가는 무니의 꿈과 환상을 그린 것일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