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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눈으로 담아낸 코로나 일상 소설가 구보씨는 1934년 식민지 경성거리를 쏘다니며 직업도 아내도 없이 살아가는 우울한 자신의 처지를 냉소합니다. 구보씨는 동경에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연애중인 연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질투를 하고 술집 여종업원에게 찍접거리다 퇴짜를 맞는 전형적인 찌질남이죠. 그의 하루를 그린 박태원의 소설 은 근대화가 막 시작된 식민도시 경성의 풍경을 근대적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화신백화점이며 조선은행이며 당대의 근대건축들이 구보씨의 시선을 통해 전달됩니다. 밤 늦도록 도시를 배회하는 사람들 역시 구보씨 만큼이나 우울합니다. 그들 역시 식민 시대를 견뎌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구보씨는 좋은 소설을 쓰기로 다짐하며 귀가길에 오릅니다. 그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2020년 서울을 사는.. 2021. 11. 29.
단편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서 읽던 소설책을 가져갔다. 빨간치마를 입은 아이라니. 경망한 제목에 표지까지 빨간색이다. 주문을 하고 밥이 나오는 동안 책을 마저 읽는데 순대국밥을 내오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표지를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 가벼운 농이라도 할까 하다가 더 민망해질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마침 식당은 한산했다. 꽤 오랜 걸음을 걸어 식당에 갔던 나는 다 먹지 못할 줄 알면서도 세트메뉴를 시켰다. 소주를 곁들여 순대와 부속고기를 먼저 먹은 후 뜨거운 국밥을 후후 불어가며 식사를 했다. 이어폰으로는 열시간짜리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가 계속 흘러나왔다. 의도치 않았지만 산책에 좋아 틀었던 음악이 의외로 순대국밥과도 잘 어울렸다. 혼밥을 할때 이어폰은 어색함을 반감시켜준다.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2021. 11. 25.
‘아비 없는 두 세대’를 잇는 공감대 영화 후기 는 하나의 사회적 이슈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어떤 시대에도 있었을 법한 조용하고 맑은 아이의 시선으로 한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 풍경에는 가정폭력이 대물림되는 부권적 사회환경, 차별과 학벌주의를 심화시키는 교육, 개발시대의 폭력적 분위기와 그 시대를 견딜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딸을 키워본 적도 없고 폭력을 견디며 살아본 적도 없어서 그런지 영화 의 은희가 겪어내는 일상의 풍경들을 보며 놀랐다. 오빠에게 맞고 자란 여성들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가부장은 가정 내에서 위계를 정하고 폭력을 내면화시키는 기저인 동시에 밖으로 국가폭력 구조를 작동시키는 최소단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가 겪는 폭력은 보호자들에게 조차 남매간의 소소한 다툼으.. 2021. 11. 23.
유화로 그려본 문래동 산책 문래동은 철공소와 수공업에 필요한 각종기계를 취급하는 작은 가게,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공존하는 곳이다. 언젠가부터 트렌디한 카페와 술집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가 되었다. 넓적한 이파리를 드리운 플라타나스 그늘이 거리를 물들이던 지난 10월, 이 거리를 걸었다. 과정샷. 2021.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