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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0

전단지 한 장의 무게 아침 출근길에 항상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종로2가 지오다노 앞 건널목 부근 낡은 운동화를 신고 쑥색 가방을 멘 할머니는 매일 한장씩 내게 전단지를 주신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도 억만겁의 인연이라는데 매일 아침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이는 얼마나 큰 인연이란 말인가 기껏해야 어학학원 강좌나 헬스클럽 개업 이벤트를 알리는 종이쪽지에 불과하지만 얼떨결에 억만겁의 인연을 쌓은 나는 그 종이 한장이, 종이 한장의 간절함이 헬스클럽 덤벨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생존이라는 두께를 알수 없는 종이뭉치를 들고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갈 그 날을 기다리며 남은 생을 한장 한장 덜어내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가 주신 손바닥만한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편의점 한구석에서 미역국 햇반을 후루룩거리다 말고 나는 깨닫는다 종이 한장을.. 2021. 11. 16.
감성변기의 최후 생각해보니 변기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던 것 같다. 이사 온지 십년이 넘도록 자잘한 고장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세월이 억울했던건지 드디어 오늘 아침 웅-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엔 변기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낮은 중저음이었고 기계의 모터 따위가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비데의 전원이 켜있었기에 비데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플러그를 뽑은 후에도 소리는 계속되었다. 원인을 알수 없는 소리였기에 걱정이 되었지만 이렇다할 이유를 생각해낼수 없었다. 우는 변기라니. 감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능숙한 배관공처럼 고개를 쑤셔박고 변기의 밑둥을 살폈다. 거기엔 말라비틀어진 비누조각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소리가 계속.. 2021.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