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항상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종로2가 지오다노 앞 건널목 부근
낡은 운동화를 신고 쑥색 가방을 멘 할머니는
매일 한장씩 내게 전단지를 주신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도 억만겁의 인연이라는데
매일 아침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이는
얼마나 큰 인연이란 말인가
기껏해야 어학학원 강좌나
헬스클럽 개업 이벤트를 알리는 종이쪽지에 불과하지만
얼떨결에 억만겁의 인연을 쌓은 나는 그 종이 한장이,
종이 한장의 간절함이
헬스클럽 덤벨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생존이라는 두께를 알수 없는 종이뭉치를 들고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갈 그 날을 기다리며
남은 생을 한장 한장 덜어내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가 주신 손바닥만한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편의점 한구석에서 미역국 햇반을 후루룩거리다 말고
나는 깨닫는다
종이 한장을 받아 드는 건 삶의 무게를 나눠 드는 것
나눠가진 무게만큼 인연을 쌓는 것
언젠가 다음 세상에서 내가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냉정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눈빛 보낼때
총총 걸음으로 출근하던 할머니가
내 인생의 종이 한 장 기꺼이 받아주리니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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