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후기
반란군을 피해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북한대사와 참사관이 그의 식솔을 거느리고 대한민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린다. 반란군도, 정부군도 믿을 수 없는 내전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UN가입을 위해 날선 외교전쟁을 하던 양측에겐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었고, 적대국의 처지를 봐줄 상황이 아니지만 한대사(김윤석)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측을 받아들인다.
양측의 긴장이 채 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무명의 남북 대사관 식솔들이 남측이 준비한 식탁에 마주 앉는다. 먹을거라고는 삶은 감자와 사발면, 약간의 밥과 반찬이 전부인 식탁. 식욕 앞에서 경계가 풀어진 양측 가족들이 정신없이 식사를 하던 중 한대사의 부인(김소진)이 깻잎을 먹기 위해 젓가락을 깻잎 접시로 가져가자 북측 임대사(허준호)의 부인이 자신의 젓가락으로 깻잎을 잡아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말없는 시선 교환.
영화 <모가디슈>를 끌고가는 서사의 밑바탕에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해할수 있는 정서적 유대가 진하게 깔려있다. 류승완 특유의 화려한 액션과 현지 느낌을 잘 살린 대규모 군중씬 등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내내 등장하지만 이 '깻잎신' 만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보여준 장면은 없다. 이만큼 내밀한 정서적 유대를 가진 민족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이니 그 스토리는 또 얼마나 절절한가. 그 정서들이 영화 <코리아>의 리분희와 현정화로, <공작>의 흑금성과 리명운으로, <강철비>의 임철우와 곽철우로 계속 변주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모가디슈>는 남북관계를 다룬 이전의 영화들처럼 신파적 상황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은 말이 역사적 사실의 재현이지 영화적 문법으로는 좀비떼가 들끓는 도시를 탈출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좀비(이 영화에서는 반군)의 출현과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협력하는 인물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면서 감정을 낭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저 깻잎을 잡아주는 정도의 유대만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하는 절제된 상황이 관객을 더 안타깝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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