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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리더가 웃어야 조직이 산다

by 아르띠무너 2021. 12. 13.

처음 사회생활 할 때 유독 눈에 띄는 선배 한분이 있었다. 여성이었고 마흔살 언저리의 선배였는데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체로 무뚝뚝했고 표정이 없었다. 옆 사무실이라 가끔 마주칠 일도 있었지만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이었다. 하루는 복도에서 고성이 들려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였다. 그녀는 머리가 벗겨진 민원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민원을 내러 온 중년남성이 선배에게 먼저 막말을 한게 싸움의 이유였다. 그녀 역시 지지 않고 민원인에게 똑같은 욕설을 받아치고 있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쌍소리라 구체적 표현은 생략) 결국 감사실 직원까지 개입하고 마무리 되었지만, 그녀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표정이 저렇게 무뚝뚝하니 욕을 먹지', '저런 여자 누가 델고 사나 몰라', '참, 사회생활 드럽게 못해요. 어떻게 들어왔을까.'...등등. 나 역시 그녀의 무뚝뚝한 성격과 굳은 표정이 싫었던 터라 그녀를 험담하는 동료직원들에게 맞장구를 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니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표정이 굳어진채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은 그녀 뿐이 아니었다. 직급이 높은 많은 남성 상사들이 수시로 화를 냈고 몇몇은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누구도 과장님의 성격이 이상해서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험담을 하지 않았다. 저런 남자와 누가 살아주냐는 농담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선배 여성의 태도와 행동에 별로 호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이해라기 보다 남초 조직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하는 연민이랄까. 아무튼 그녀의 무뚝뚝함과 무표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거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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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읽은 우석훈의 책 <민주주의는 회사 문앞에서 멈춘다>에서 저자는 그 회사의 사내 민주주의 정착 정도를 여직원들의 억지웃음 문화로 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경험적으로 동의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자,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자, 소속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여기서 솔직하다는 것은 감정표현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즐거우면 실없는 농담을 한다. 솔직한 성격이 타인의 감정선을 흐트러뜨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쉽게 풀리는 성격은 남성적인 호방함으로 위장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실무자, 그것도 여성 실무자들은 그럴 수 없다. 그녀들은 매사에 밝게 웃어야 하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으며 넘겨야 사회생활을 슬기롭게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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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는 이유로 개념없는 연예인으로 낙인찍히고 소신있는 발언이나 튀는 행동을 하는 여성 연예인은 악플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사회를 누가 만드는 걸까. 여자는 조신하게 수줍은 표정이나 짓고 웃기지도 않는(심지어 저질적인) 농담에도 웃어줘야 인정받는 사회를 누가 만드는걸까. 어느순간부터인지 나 역시 매사에 밝게 웃어주는 여성이 있는 조직의 그늘이 보였다.

생각해봐라. 웃어야 하는 건 여성이 아니라 리더다. 리더가 웃어야 조직이 밝아지고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진다. 나이들고 직책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할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폐를 끼칠수 있는) 감정을 더 잘 숨기고 컨트롤 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감정노동을 해서라도 조직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자가 리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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