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라고 하나 보슬비라고 하나. 오락가락 하네. 우산을 두고 잠깐 나왔다가 자칫 다 젖을뻔했어. 곧 우주여행을 할 인류가 비 앞에서는 고작 우산 뿐이네. 참 대책이 없어. 생각해보면 인류가 발명한 물건중에 우산처럼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도구도 없지 싶네. 재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초기의 우산과 지금의 그것이 형태나 구조면에서 변한거 같진 않고. 우산이 없으면 짐승과 다를게 없잖아. 제 아무리 위엄있는 통치자도, 거부도 쫄딱 맞고 뛰어다녀야 하지. 원래 사람이라는게 참 볼품없는 존재라고.
언젠가 인근 수덕사에 산책을 간적이 있어. 초파일을 앞둔 때였고, 당직때문에 귀가하지 못했던 주말이었지 아마. 혼자 일주문을 지나 천천히 걷고 있는데 멀리서 연등이랑 기와를 파는 곳이 보이더라. 대웅전에서 기도나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기와라도 하나 얹어야하나 싶더라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맨손으로 기도만 해서는 안될거 같고.
암튼 그래서 기와를 하나 얹어야겠다 싶어 순서를 기다리며 앞서 기와에 소원을 적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이거 참. 소원이라는게 다들 왜 이리 소박해. 고작 시험합격, 사업번창, 건강하게 해주세요, 우리 아무개 병낫게 해주세요. 그걸 보고 눈물이 핑 돌더라.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 나약해. 한치 앞도 모르고 위태로운 희망에 의존해서 살아가지.
신을 만나서 막상 소원을 말할 기회가 주어져도 우리가 내뱉는 소원이란게 고작 저런 것들일거라고. 그러니 기와를 얹으나 연등을 올리나 염불을 드리나 백팔배를 하나 다 마찬가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기와 같은거 필요없겠다 싶어서 그냥 절만 미어박고 나왔지. 어차피 내 소원이란 것도 거기서 거기였거든.
생각해보면 종교라는게 마음에 중심을 잡으려고 할때 필요한거 같아. 시험을 앞두었거나, 수술을 앞두었거나, 개업을 했거나, 결혼을 했거나, 내 마음이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건데 갑자기 내린 비에 우왕좌왕 뛰어다니면서 기와를 올리고 연등을 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비가 내리면 그칠때까지 잠깐 머무는거야. 남의 처마 밑이라도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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