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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왜 그림 그려요?-2

by 아르띠무너 2021. 11. 18.

인상적인 장면을 보면 그 순간을 남기고 싶다. 대단치 않은 일상의 풍경도 때에 따라 마음을 잡아끌곤 하지 않나. 사람들이 멀쩡하게 갈어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이유도 그렇다. 눈길이 발길을 잡아끄는 것이다. 그렇게 담긴 사진은 기억에 남지 않아도 앨범 어딘가에 남는다. 필요할때 찾아볼 수 있는 어딘가에 그 순간을 남길수 있다는 것.

순간을 남긴다는 건 시간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움켜잡고 싶은게 어디 순간 뿐이겠냐만, 우리는 헛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림은 찰라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개발된 기술이다. 사진도 그렇지만 그림은 사진에 비해 더 집요하게 한 순간을 잡아맨다. 그림은 집요한 욕심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순간을 소유(한다는 착각을 제도화)하기 위해 그림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다.

사내의 굽은 등어리 위로 노란 조명이 내려앉는다. 어두운 신촌의 어느 lp바에서도 눈길은 발길을 잡아맨다. 사내의 굽은 등이 꼭 사내의 것만일까. 홀로 앉아 술을 홀짝이는 이 쓸쓸함이 온전히 그의 것만이겠는가. 멈칫, 서서 그 모습을 담는다. 낯선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그 언젠가의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타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 우연히 마주친 타인의 삶에 자신을 투영해보는 것. 내 인생의 찰라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순간이 나에게 의미있는 장면이라면. 그 또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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